영원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 현역 은퇴 / 2012년11월30일
☞ '코리안 특급' 전설 속으로… 박찬호 은퇴
★...공주 중동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공을 잡았다. 공주중학교 3학년 때는 포지션을 투수로 바꿨고, 금새 공이 가장 빠른 투수로 이름을 떨쳤다. 사실 제구가 그리 좋은 투수는 아니었다. 한양대 시절 시속 150km가 넘는 직구를 손쉽게 뿌렸지만 변화구 제구력은 숙제로 남았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LA다저스는 120만 달러의 계약금을 안기며 한국의 유망주 투수를 영입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39ㆍ한화)가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한화는 29일 '박찬호가 오늘 오후 은퇴 의사를 전달해 왔다'면서 '구단은 박찬호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양대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간 박찬호는 17년 간의 메이저리그 생활과 일본 무대 경험, 올해 한화에서 보인 투혼을 뒤로 하고 19년 간의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함태수기자 hts7@sphk.co.kr ▒☞[출처]한국일보 |
☞ '은퇴' 박찬호 "나는 운이 좋은 녀석이었다"
★...그라운드를 떠나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39)가 "나는 운이 좋은 녀석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 29일 현역 은퇴를 공식 발표했던 박찬호는 30일 서울 중구 소공로 플라자호텔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결심하기가 어렵고, 결정하는데 시간도 많이 필요했다"며 "결정을 하면서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굉장히 그리울 것 같다"고 운을 뗐다. 1994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계약을 맺으면서 시작된 19년간의 프로 생활을 마감한 박찬호는 "이제 끝난다는 말을 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또 다른 시작과 약속, 꿈을 가지고 새로운 설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을 '참, 운이 좋은 녀석'으로 표현하면서 "시골에서 태어나 뭣도 모르고 주위 권유로 야구를 시작했다. 야구가 재미있고, 경쟁심이 생겨 열심히 하다보니 대학에 가고 프로 선수가 됐다. 어려움 속에서 긴 시간 메이저리그에 몸담을 수 있었다"며 "한국 야구 역사상 저만큼 운이 좋은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찬호는 관심을 모았던 자신의 거취에 대해 "야구 행정과 경영, 구단 운영, 그리고 야구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이 많다. 미국과 한국의 중간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며 "어떤 구단에 소속돼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고 미국 쪽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달에 미국으로 건너갈 것이라고 말한 박찬호는 "연말을 미국에서 보내며 미래에 대한 설계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중부매일 |
☞ 당신과 함께한 19년 행복했습니다, 굿바이 찬호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39)가 19년 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29일 은퇴를 선언했다. 1994년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 입단한 그는 빅리그 17시즌 통산 124승을 거두며 아시아 최다승 기록을 세웠다. 박찬호가 다저스 시절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모자를 벗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있다. 당시 동양에서 온 예의 바른 선수가 주심을 향해 모자를 벗어 인사하던 모습은 메이저리그에서 큰 화제가 됐다. / 한국일보 자료사진, AP=연합뉴스 ▒☞[출처]한국일보 |
☞ 눈물 흘리는 박찬호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30일 오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원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30일 오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메이저리거 시절 입었던 유니폼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30일 오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내셔널리그 우승 반지를 보여주고 있다.연합뉴스
★...영원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30일 오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연합뉴스 ▒☞[출처]영남일보 |
☞ 박찬호 "끝 아닌 시작…美서 야구경영 공부" "나는 한국야구 최고의 행운아…지도자도 목표 안에 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30일 오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내셔널리그 우승 반지를 보여주고 있다./연합
'코리안 특급' 박찬호(39)가 "나는 한국야구 최고의 행운아"라며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선수로서의 인생을 정리하고, 경영인이나 행정가 등으로 야구인생의 제2막을 열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다. 박찬호는 30일 서울 중구 소공로 플라자호텔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30년간의 선수 생활을 끝내는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밝혔다. 1시간30분 가량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박찬호는 먼저 "이제 끝난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 "또 다른 약속과 도전, 또 다른 꿈을 위해 새로운 설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찬호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아시아 출신 선수로는 최다승(124승) 기록을 세우고, 일본을 거쳐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 은퇴하기까지의 과정을 돌아왔다. 그러고는 "나는 운이 좋은 녀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충남 공주 출신의 박찬호는 한양대에 재학 중이던 1994년 다저스에 입단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텍사스(2002년~2005년)-샌디에이고(2005~2006년)-뉴욕 메츠(2007년)-다저스(2008년)-필라델피아(2009년)-뉴욕 양키스·피츠버그(2010년)에서 뛰었다. 메이저리그에서 17시즌을 활약하는 동안 통산 476경기에 등판해 124승98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4.36의 성적을 남겼다. 지난해 일본 오릭스 버펄로스를 거쳐 올해에는 한화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한국프로야구 마운드에 올라 23경기에서 5승10패, 평균자책점 5.06의 성적을 내고 선수 생활을 끝냈다.
★...영원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30일 오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연합
박찬호는 "시골에서 태어나 아무것도 모르고 주위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했다"면서 "미국에 진출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긴 시간 메이저리그에 몸담았을 때 같이 했던 분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주위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한국야구역사상 저만큼 운이 좋은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한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이날 박찬호가 기자회견을 한 단상에는 공주중·고, 프로 선수로 첫발을 디딘 다저스와 마지막 소속팀이 된 한화 이글스, 국가대표팀 등 그동안 그가 거쳐 갔던 팀의 유니폼이 내걸렸다.
환희와 좌절을 반복하면서도 꿋꿋하게 마운드를 지켜온 지난날을 유니폼을 통해 떠올린 박찬호는 잠시 감정에 북받친 듯 울먹이기도 했다. 박찬호는 은퇴를 결심하게 가장 큰 이유에 대해 "한국으로 올 때 1년을 목표로 삼았다"면서 "이후 한국야구를 위한 나의 역할에 대해 분명하게 계획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더는 미련을 갖지 않고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박찬호는 앞으로 야구 행정이나 경영을 공부해 한국야구와 선진야구의 중간에서 교류를 돕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오랫동안 야구를 하면서 기술적인 부분에 관심을 두고 많이 배우고 경험하고 실험했다"면서 "하지만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오래전부터 관심 가져온 야구 행정과 경영, 운영 등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체계적인 공부는 미국에서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 "지도자라는 역할은 앞으로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들 안에 있다"면서 "좋은 지도자, 정확한 지도자가 되고자 더 공부를 해야할 것 같다"고 밝혀 '지도자 박찬호'의 모습도 기대하게 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30일 오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지난 시절 입었던 유니폼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연합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만들어 유소년 야구 꿈나무들을 지원해 온 박찬호는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배우고 공부하고 싶다"면서 "현재 개최하는 꿈나무 대회도 있는데 더욱 값지게 하고 의미를 높여 발전시키도록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박찬호는 멈추지 않고 달려온 자신에게 한마디 해 달라고 하자 "'수고했다. 장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면서 "무언가 이뤄내서가 아니라 잘 견뎌낸 것에 대해서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박찬호는 자신에게 야구는 '학교'라고 정의했다.
그는 "공부보다 야구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면서 "책으로 배우지 못한 가르침을 야구를 통해 배웠고 야구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오히려 제게 더 성숙하고 의미 있는그런 삶을 살게 한 동반자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야구장에 가면 항상 '무엇을 할까, 무엇을 배울까'라는 생각들을 했다"면서"시련을 겪다 보니 야구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대할 수 있게 됐다"고 야구의 의미를 곱씹었다.
은퇴 기자회견을 하는 시간이 7년 전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리던 시간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은 박찬호는 마지막으로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는데 아쉽다는 말보다 더 감격스럽게 느껴졌다"면서 "죽을 때에도 축하한다는 말을 듣도록 새로운 삶도 더 열심히 살겠다"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박찬호는 12월에 미국으로 건너가 가족과 함께 연말을 보낼 계획이다.[연합뉴스] ▒☞[출처]한라일보 |
☞ 챔피온 반지와 눈물의 박찬호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19년 야구생활을 마감하는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press@newdaily.co.kr ▒☞[출처]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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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호 은퇴에 팬들 "우리의 영웅…수고했습니다"
★...아듀! 박찬호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고 29일 한화 구단이 밝혔다. 사진은 지난 10월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홈경기에서 박찬호가 마운드를 내려오며 관중에게 인사하는 모습. 2012.11.29 << 연합뉴스 DB >> pdj6635@yna.co.kr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코리언 특급' 박찬호가 화려한 선수 생활을 마감하기로 결정하자 그의 공 하나하나에 울고 웃었던 팬들도 앞다퉈 덕담을 건넸다. 29일 오후 은퇴를 발표한 직후부터 박찬호의 홈페이지에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앞날의 행운을 비는 팬들의 인사가 이어지고 있다. 팬들은 19년 동안 미국, 일본, 한국 프로야구 무대를 거치며 도전을 멈추지 않고 국민에게 희망을 전한 박찬호에게 "수고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고마워했다.
★...프로야구 박찬호 은퇴
(서울=연합뉴스)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고 29일 한화 구단이 밝혔다. 사진은 지난 10월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홈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해 역투하는 박찬호. 2012.11.29 << 연합뉴스 DB >> zjin@yna.co.kr
'임권혁'이라는 ID를 쓰는 팬은 "그동안 전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며 공을 뿌리던 모습 잊지 않겠다"며 "그동안 국민 투수 박찬호로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응원했다. '나영환'이라는 팬도 "어린 시절 다저스에서 뛰는 형을 보며 즐거웠고 자랑스러웠다"며 "이제는 선수가 아닌 다른 인생을 살겠지만 그래도 나의 영원한 영웅"이라고 마음을 전했다. '임동찬'이라는 이는 "당신이 있어서 즐겁고 행복했고, 팬이어서 기뻤다"면서 "등번호 61번, 코리언 특급 박찬호는 영원히 우리의 뇌리에 남을 것"이라고 떠나는 뒷모습에 박수를 보냈다
★...<그래픽> 박찬호 주요 약력
(서울=연합뉴스) 장예진 기자 = '코리안 특급' 박찬호(39·한화이글스)가 현역 선수 생활을 끝내기로 전격 결정했다. 박찬호는 30일 오전 11시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은퇴와 관련한 공식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다. jin34@yna.co.kr @yonhap_graphics(트위터)박찬호가 뛰는 모습을 조금 더 보지 못하는 데에 아쉬운 마음을 전하는 이들도 있었다.
'황규만'이라는 ID의 누리꾼은 "한국에서 공을 던지는 모습을 1년 더 보고싶다"며 "팬의 욕심인 것을 알지만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꿀 수는 없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아직 한 경기도 직접 경기를 보지 못했다며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고 쓴 이도 있었다. 이 밖에도 누리꾼들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박찬호의 활약을 추억하고 그의 결정에 응원을 보냈다. sncwook@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출처]연합뉴스 |
☞ '코리안특급' 박찬호, 영욕의 19년 마감하다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승(124승)의 주인공, 박찬호가 19년 간의 프로 생활을 마감한다. 공교롭게도 자신의 결혼기념일인 11월 30일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은퇴를 발표하게 됐다.
1973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박찬호는 공주중동초 4학년 때 야구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공주고를 졸업하고 한양대에 진학할 때만 해도 보통의 야구선수와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동기생인 조성민 임선동 등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2학년 때인 1994년 1월 박찬호는 120만달러(약 13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LA다저스와 입단 계약을 맺어 한국야구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국내 최초의 메이저리거라는 타이틀이 전부가 아니었다. 박찬호는 신인으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역대 17번째 선수가 되면서 현지 언론을 들썩이게 했다. 하지만 2경기 만에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야 했고, 2년을 기다려야 했다.
1995년 9월, 확대 엔트리 시행으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다시 밟은 박찬호는 1996년 4월 7일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경기서 2회말 햄스트링 부상을 호소한 선발 라몬 마르티네스를 구원등판해 4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한국인 메이저리그 첫 승을 올렸다. 5일 뒤엔 플로리다와의 홈경기에 선발등판해 첫 선발승을 올리기도 했다. 그해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5승5패 평균자책점 3.64를 기록, 가능성을 보였다
★...이후 박찬호의 행보는 탄탄대로였다. 풀타임 선발투수로 맹위를 떨쳤다.
1997년 14승을 올리며 처음으로 10승 고지를 밟은 박찬호는 1998년 15승, 1999년 13승을 거뒀다. 2000년에는 자신의 한 시즌 최다승인 18승을 올리며 최전성기를 맞았다. 마지막으로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15승을 올린 2001년엔 데뷔 후 처음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당시 은퇴를 앞둔 '철인' 칼 립켄 주니어(볼티모어)에게 생애 마지막 홈런을 맞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찬호는 2001년 말 텍사스와 5년간 6500만달러(715억원)에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했다. 하지만 '대박'의 기쁨도 잠깐이었다. 박찬호에게 텍사스 시절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암울한 시기였다. 허리 부상이라는 암초를 만나 '메이저리그 역대 최악의 먹튀'라는 오명을 얻었다. 텍사스 첫 해 9승을 올린 뒤 2003년 1승, 2004년 4승에 머물렀다.
2005년 6월 5일 캔자스시티전에서 통산 100승을 올리는 등 허리부상을 이겨내는 듯 했지만, 7월엔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그해 12승8패를 거두며 부활하나 싶었지만, 2006년 뜻하지 않은 장출혈로 생사의 기로에 서는 등 고난을 겪고 7승을 올렸다.
2007년엔 뉴욕 메츠 유니폼을 입었지만, 단 1경기 등판 후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이후 휴스턴으로 팀을 옮겼지만,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하는 아픔을 겪었다. 2008년엔 친정팀인 LA다저스로 돌아와 중간계투요원으로 4승4패 2세이브를 기록하며 다시 일어섰다. 이후 필라델피아와 뉴욕 양키스, 피츠버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피츠버그에서 뛰던 2010년 10월 2일 플로리다전서 구원승을 올리며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승(124승) 기록을 새로 썼다.
박찬호는 지난해 일본 무대에 진출해 재기를 노렸지만, 오릭스에서 1승5패, 평균자책점 4.29에 그쳤다. 이후 '박찬호 특별법' 통과로 한국 무대를 밟을 수 있게 됐고, 고향팀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박찬호가 남긴 마지막 기록은 23경기서 5승10패 평균자책점 5.06이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출처]스포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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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호 '통큰 입단'
★...[2011.12.20] 국내로 복귀한 '코리안특급' 박찬호(38)가 2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한화이글스 입단식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는 박찬호와 연봉 2400만원에 계약을 체결하고 1년간 총 6억원(연봉 4억원 옵션 2억원)은 박찬호의 뜻에 따라 국내 유소년 및 아마야구 발전을 위해 기부하기로 했다. (머니투데이 제공) News1 방인권 인턴기자 ▒☞[출처]머니투데이 |
☞ 박찬호 과거와 오늘
★...[2005.11.30] [일간스포츠] 박찬호(32.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11월 30일(한국시간) 결혼식을 통해 새로운 인생에 힘찬 첫발을 내디뎠다. 한양대 재학시절 시속 156km를 던지는 강속구 투수로 혜성같이 나타나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FA 대박, 부상과 재기,106승 투수(2005년 현재) 등 드라마 같은 인생을 거쳐 온 박찬호의 어제와 오늘을 사진으로 정리했다. '메이저리그에 꼭 도전하고 싶습니다.' 공주고시절이던 1991년 봉황기 스타로 뽑힌 뒤 주먹을 불끈 쥐고 포즈를 취한 모습.
★...[1993.1.10] '광속구 투수의 등장.' 한양대 재학 중 국내 최고인 구속 156km를 기록, 1993년 1월 10일 일간스포츠 1면을 장식했다. 이후 박찬호는 일간스포츠 역사상 가장 1면에 많이 등장한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1994] '최초의 한국인 빅리거 탄생' 1994년 계약금 120만 달러에 LA 다저스로 깜짝 입단할 때의 모습. 당시 박찬호는 "100억 원만 벌어오겠다"고 말했는데 그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1998] 박찬호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금메달 획득에 앞장섰다
★...[1999]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은 박찬호는 1999년 말 공주의 한 부대에서 4주 간의 기초 군사 훈련을 소화해 병역 의무를 마쳤다
★...[2001] 박찬호는 2001시즌 뒤 FA 자격을 얻어 LA 다저스에서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하면서 5년 간 6500만 달러의 대박을 터뜨렸다. ▒☞[출처]일간스포츠 |
☞ 박찬호 텍사스 입단∼2002시즌
★...[2001.12.24] 텍사스 레인저스 입단식에서 슈퍼스타 알렉스 로드리게스,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왼쪽부터)와 포즈를 취한 박찬호. ▒☞[출처]동아일보 |
☞ ‘은퇴’ 박찬호, “가장 까다로웠던 타자는 배리 본즈”
★...코리안 특급’ 박찬호(39)에게 가장 까다로웠던 타자는 배리 본즈였다.박찬호는 3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 자리에서 19년간의 프로야구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소감을 밝혔다.이 자리에서 박찬호는 한국, 미국, 일본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한 선수로서 느꼈던 것들에 대한 속내를 드러냈다. 먼저 “나에게 가장 고마웠던 타자는 내가 선발투수로 등판했을 때 맹활약을 펼친 선수다”며 농담을 던진 박찬호는 “필라델피아 시절, 선수들이 나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해줬다. 이에 ‘역시 전년도 우승팀의 여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월드시리즈 준우승을 경험했던 필라델피아 시절을 떠올렸다.
또한 박찬호는 “꿈이 다양한 선수들이 나에게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며 “비록 성적은 저조했지만 내가 124승을 거두게끔 도와준 구단이다”라고 피츠버그 유니폼을 입었을 때를 회상했다.지난 2010년 9월13일,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로 개인통산 123승97패를 기록해 노모 히데오가 2005년 수립한 아시아 투수 역대 최다승과 타이를 이뤘던 박찬호는 그해 10월2일, 플로리다와의 경기에 구원 등판해 3이닝 동안 6탈삼진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124승째를 올렸다. 이로써 박찬호는 노모의 종전 아시아 투수 역대 메이저리그 최다승 기록을 경신하는 위업을 세웠다.
이어 메이저리그에 몸담았을 때 가장 까다로운 타자는 누구였냐는 질문에 “배리 본즈였다”고 짧게 답한 박찬호는 “본즈는 홈런을 많이 치는 타자이면서도 선구안이 좋아 유인구를 잘 치지 않는다”며 홈런을 허용했던 상황을 설명했다.박찬호는 지난 2001년 10월6일 샌프란시스코와의 원정경기서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이날 박찬호는 본즈에게 시즌 71호 및 72호 홈런을 허용해 1997년 마크 맥과이어가 기록한 시즌 최다홈런(70개)을 넘어서게 만든 피홈런 투수로 남게됐다.
마지막으로 박찬호는 “이승엽(삼성)이 배리 본즈와 가장 가까운 성향의 타자라 생각한다”며 후배 이승엽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한편 박찬호는 지난 29일 구단을 통해 공식 은퇴 의사를 전달했고, 구단이 이를 수용해 19년간의 프로야구 선수생활을 마감했다./파이낸셜뉴스 스타엔 syl015@starnnews.com이세영 기자 ▒☞[출처]파이낸셜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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